칼럼
충북의 인재양성과 평생교육에 대한 시각을 제시하는 외부 전문가의 「칼럼」 입니다

그림이 空間의 예술이고, 음악은 時間의 예술이라면, 배움은 깨달음(覺間)의 예술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학습’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구분되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배움은 학습과 달리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구분되지 않고, 각자가 깨달은 주관적 믿음을 서로 교환하여 자각적 합의에 도달하는 인간의 본성적 특징이다. 배움의 어원은 “배다”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배움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 즉, 자연스럽고 무형식적인 채득활동이다. 인간은 본디 배움 본성을 타고난 생물학적 온전한 존재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규범과 문화에 순응하는 과정을 통해 배움이 결핍되어 간다.
배우지 않고 지식을 소유하는 데만 익숙한 사람은 지식의 덫에 빠질 수 있다.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맥락 속에서 현상을 파악하기 못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된 지식’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수동적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 지식인이 빠질 수 있는 세 가지 형태의 학습의 덫(trap)은 첫째, 이미 알고 있는 해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는 익숙함의 덫이다. 둘째는, 스스로 터득해 놓은 해법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성숙의 덫이다. 셋째는, 해법을 찾을 수 없을 때 이미 알고 있는 유사한 해결책으로 상황을 동일시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근접성의 덫이다.
지식이 많이 축적되어진 전문가들일수록 자신의 판단에 대한 오만에 빠지기 쉬우며 변화를 일으키기 힘들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축적해 놓은 학습결과가 올바른 판단을 해줄 것이라 믿으며 새로운 경험, 즉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고자 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개인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큼 기존의 오래된 지식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폐기학습’이 중요하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큼 기존의 쓰임새없는 지식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배움’에서의 ‘비움’은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잘못 배웠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잘못 배워진 것들을 빨리 비워내는 것이므로 배움의 뒷면은 비움이다. 새로이 배우고 더 배우기 위해서는 비워내야 한다. 비워내지 못하면 비워진다. 스스로 배워내지 못하면 비움 역시 다른 사람에 의해 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배움’의 과정에서 ‘채움’의 과정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비움’의 과정이다. 비움은 학습활동에 불필요하거나 무질서하게 채워진 것을 정리, 정돈하는 활동이다. 인간의 배움이 자연스러운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교육’이라고 부르는 배움의 행위나 과정들은 오히려 인간의 배움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저 훈련하고, 조직의 성과를 내는 부속품으로만 인간을 대하기 때문에 교육의 장은 불편하고 역겨운 곳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배움은 바로 ‘지혜를 찾아 나서는 일“로 시작된다. 제대로 된 배움은 서로를 즐기고, 서로 배우고, 서로 익히며, 서로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배움은 차 한 잔을 마시는 짧은 시간에도 가능하고, 깊은 사색으로도 가능하다. 어쩌면 제대로 된 배움은 해프닝 속에서도 가능하다. 제대로 된 배움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 어디에서든, 어떻게든 일어난다. 장소가 배움이 되고, 때가 배움이 되며, 배움에의 참여가 시간과 장소가 된다.
상대방이 잘난 체 아는 척하면 흔히 하는 말이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고 덤벼’라는 표현을 쓰면 기분 상해한다. 이것은 가르치는 존재는 별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의 틀이다. 하지만, 배움은 누구에게서나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동료 간, 심지어 상하 간에도 충분히 일어난다. 王明이 이야기한 것처럼 “남을 가르치는 사람, 남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나 먼저 배워야 한다.” 그리고 낯선 길을 가려면 현재 힘들게 얻은 소위 ‘전문성’을 모두 버리고 비우고 새로 채워야 한다.
새로움은 늘 과거로부터의 연결이 아닌, 단절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Paulo Freire의 말처럼 희망을 새롭게 찾는 유일한 방법은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려고 하면, 경계를 벗어나려고 하면 흔히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고 경고하곤 하지만, 그것은 용기있는 자들에 대한 겁 많은 자들의 항변일 뿐이다. ‘단절’의 경험 없이, 끊어냄의 용기 없이, 옛것과 결별하지 않고 그 어떻든 선택과 결정이라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갈등을 겪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창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길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대로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새롭게 걷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제 낯선 길을 가려면 힘들게 얻은 것일지라도 모두 버리고, 비우고, 새로 채워야 한다.
배움은 평생에 걸친 인생과업이다. 배움은 생업(生業)이기에 즐거움이 뒤따라야 한다. 배움은 평생을 함께 해야 할 동행(同行)이기에 지루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배움은 자발적인 동참과 더불어 미래를 바라보며 함께 가는 친구이다. 배움은 비록 나란히 가지는 않을 지라도 서로 어깨를 빌려주며 함께 걷는 현재의 동반자이다. 각자의 삶의 터전에 기반한 배움의 공간을 통해서 많은 배움의 동반자들이 서로 접하고 서로 익히고 서로 나누고 서로 즐기고 서로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소통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배움의 행복이 충북인재평생교육진흥원과 충북의 평생배우미(학습자) 각자의 삶살이에 계속해서 넘쳐나기를 기원한다.